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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달도, 사랑 그리고 릴리

츤츤
2018-09-12
조회수 1796


‘사랑의 섬’


무엇때문인지 몰라도 외달도는 이런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연안 여객선 터미널에 붙어있던 섬 관광 안내도에서 하트 모양의 수영장 사진을 보고는 아마도 저 것때문에 그런 뻔뻔한 이름을 붙이고 마케팅을 하는건가란 생각을 했다. 섬에 간다는 사실 만으로 사랑이라는 걸 보장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새로운 공간으로 여행을 떠나는 행위는 나와 다른 존재를 만나 적응하는 단계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그래도 대놓고 사랑의 섬이라니 왠지 모를 이 자신감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이름에 쓰인 한자를 풀이해봐도 전혀 사랑을 찾을 수 없다. 순우리말은 달리도의 바깥쪽에 있는 섬을 지칭하는 ‘밖다리섬’이라고 한다. 외롭게 떨어져 있어 외로운 달동네라는 뜻으로 ‘외달도’라 지었다는 말도 있다고 한다.


어쨌든 한국관광공사가 ‘국내 휴양하기 좋은 섬 베스트 30’ 가운데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고 하니 도대체 어떤 섬인지 호기심이 좀 더 커졌다.


목포항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이 좀 안 되는 뱃길을 달려 섬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건 노란색으로 된 섬의 간판이었다. 다른 섬들과 다르게 이 곳이 관광지라는 걸 알리는 표지석과도 같은 존재. 흐린 날씨, 우리 괜찮아 마을 사람들을 제외하곤 한산한 섬의 풍경에서 이 곳이 정말 유명한 곳이 맞나란 생각도 들었다. 풀숲이 우거진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너른 벌판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난 공원이 보였다. 아마도 관리를 안한지 꽤 된 거 같았다. 화훼원을 지나 해안도로를 따라 죽 걷다보니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썰물때라 그런지 물이 많지 않았다. 수온도 차가워 바다에 뛰어들어 놀기는 무리가 있었다.


호기심 반, 기대감 반으로 외달도에 갔지만 기대감이 컸던 탓일까. 영락없이 쇠락해가는 모습만을 보여주는 이 섬에서 사랑이 싹틀 것 같은 그런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날씨가 흐려서 그랬을까, 쓸쓸한 느낌을 주는 가을바람이 날아왔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 마음의 태도 때문이었을까.


저 멀리 물이 빠진 해변의 끝에 온통 노란색을 칠한 벽에 굵은 검은색 띠를 두른 등대가 보였다. 다소 이질적이면서도 묘한 끌림을 주는 곳이었다. 근처 돌무더기의 색깔로 짐작하건대 썰물일 때만 길이 열리는 곳 같았다. 외달도의 작은 등대는 그렇게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삼삼오오 등대에 모여든 사람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과자와 떡을 나눠먹으며 담소를 나눴다. 그렇게 놀다보니 어느덧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다. 왔던길을 그대로 돌아가려다가 섬 안쪽으로 돌아가는 길도 있다고 해서 그리로 걸음을 옮겼다. 넓게 깔린 돌 바닥, 양옆으로 로즈마리와 가로수가 줄지어 서있는 길을 따라 걷다보니 사진에서 보았던 풀장이 보였다. 물이 다 빠져버린 수영장이긴 했지만 그래도 깔끔한 모습에 왠지 안도감이 들었던건 왜일까. 이 곳이 완전히 버려지진 않았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던 걸까.


외달도. 축제가 끝났지만 다시 찾아올 그 때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간직한 이 곳은 마치 내 마음과도 같았다. 그래서 측은했는지도, 그래서 바닷길이 열린 노오란 등대를 보고 괜한 안도감이 들었는지도. 


숙소에 돌아와 나른한 시간을 보내다 모둠 사람들끼리 거실마루에 둥글게 모여앉아 방문님에게 사주 풀이를 들었다. 나의 연애운은 순수한 사랑이며 백합과도 같은 사람을 만난다고 했다. 올해 안에 결혼을 해야 좋다고 하니 모둠 사람들이 어서 릴리를 찾아야된다며 엄청 놀렸다.


릴리… 만날 수 있을까. 아니. 이미 만났는지도 모르지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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