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었던, 모든 이야기

누가 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당신이 보고 싶어 열어놨어요.

2018년 9월 7일 금요일 [뒤늦은 일기]

자영
2018-09-12
조회수 2004


언제 이런 때가 또 있을까. 등대 옥상에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항상 타인과 더불어 지내는 생활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혼자 있고 싶었다. 음악을 듣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노을이 펼쳐져 있었다. 너무나 찬란했고, 황홀했다.

단체 카톡방에도 노을을 보라는 메시지와 사진들이 속속들이 올라왔다. 이 마을 사람들과 각자 다른 곳에서 하지만 다 같이, 노을을 쬐었다. 그때야 깨달았다. 노을은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쬐는 것이라는 걸. 마치 모닥불을 둘러앉은 사람들이 멀리 떨어져 있거나, 반대편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온기를 나눌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노을 아래 선다는 것은 절대 혼자일 수 없다는 것을. 당장은 혼자여도, 어차피 같은 하늘 아래 있다면 우린 노을을 모여 쬐고 있다는 것을 오늘에야 깨달았다. 

해는 곧 지고 다 함께 모여 신명나는 길놀이를 하였다. 북, 꽹가리, 장구, 징, 소고까지 장단이 딱딱 맞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랴. 우린 흥이 나 있었고, 모두 손가락이 까지고 무릎이 쑤셨다. 두 번의 놀이가 끝나자 누구 하나 성한 사람 없었건만, 앵콜 공연까지 몸을 사리지 않았다. 공연 후 우진장 옆 방앗간 아주머니의 푸짐한 파전과 막걸리는 인심이요, 노래 한 가락은 덤이었다.

젊은 흥은 멈출 줄을 모르고 분위기를 부추겼다. 우린 우진장의 옥상으로 향했다. 하늘은 쾌청했다. 별도 가득했다. 별보다 빛나는 조명을 켜고, 비눗방울을 불었다. 비눗방울은 내 혈중알콜농도와 비례하여 하늘 높이 제 몸을 띄웠다. 

그날 밤, 우진장 옥상에서 내가 본 것은 음악을 트는 이와, 평상 위에서 서로를 향해 쓰러지는 몸짓, 두둥실 올라간 비눗방울, 그리고 음악에 격렬한 반응을 하는 우리들이었다. 격한 반응은 추억의 노래를 튼 탓이었다. 20세기의 노래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지 않을 수 없다는 것에 매우 공감할 것이다. 지난 세기의 음악을 들으며 그때를 추억했고, 그 추억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던 날. 그래 그게 오늘이었다. 

처음에는 이 마을이 조금 피곤하게도 했다.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이 크게 느껴졌고, 왠지 정이 붙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이렇게 나는 공동체 생활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가, 인간을 혐오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어 슬프기도 했다. 

하지만, 불현듯 서로의 숨겨진 반짝임을 볼 수 있는 날이 있다. 같이 노을을 쬐는 날이라던가, 같은 음악에 반응하는 날들. 그런 날이라면 누가 어떤 약점을 가졌든, 우린 서로를 사랑할 수 있다. 

나도 인간이기에, 살면서 싫어하는 사람이 생겨난다. 그러면 안 되는 거리고, 내가 그릇이 작은 거라고 반성해봐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싫어한 사람도 서로의 반짝임을 볼 수 있는 마법 같은 순간에 함께라면 사랑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 찰나를 믿어보기로 했다. 내가 지금 누군가를 미워할지언정, 언젠가 어느 순간에 사랑할 수 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기로 했다.

말이 너무 길어졌다. 그니까, 나는 좀 더 자주 노을을 쬐어보기로 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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