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포에 내려온 지 벌써 3주가 지났다. 은근한 온기로 겨울을 밀어내는 봄과 같은 시간을 보냈다. 얼굴에 그늘이 가득해 거울을 보기도 두려웠던 시절이 벌써 아득하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찍어준 사진과 영상을 보면 하나같이 웃고 있는 모습만 가득하다. 끝이 기약되어있는 나머지 3주의 시간이 벌써 아쉽고 생각조차 하기 싫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지금, 이 순간 순간에 충실할 뿐. 소중한 사람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아껴주는 것뿐.
목포행 기차에 몸을 싣던 그 날, 태풍이 남기고 간 짙은 먹구름이 잔뜩 껴있던 그날의 하늘처럼, 내 마음은 번민의 구름으로 가득했었다. 비가 흩뿌리던 300여 킬로미터의 기찻길을 달려 목포에 도착하자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햇살은 마치 세상에는 아직 빛이 남아있다는 희망을 안겨준 이 곳, “괜찮아마을”과 마을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계시 같은 그 무언가였는지도 모르겠다.
무기력의 바닥에서 어떻게든 힘을 쥐어짜 내어 간신히 자기소개를 하고 저녁으로 도시락을 먹었다. 오른쪽 귀에 말이 걸려왔다. 시작이었다. 순진한 어둠은 아주 작은 빛이 있어도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에겐 그 빛이 너무 소중했다. 고마웠다.
밥을 먹은 후 숙소를 정하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던 그 사람의 빛을 따라 맴돌았다. 그리고는 어디에 머물 거냐고, 함께 한옥에서 지내자고 설득했다. 그렇게 우리는 봄꽃이 피어오르는 집 춘화당에 함께 살게 되었다.
여름을 좋아해 썸머라는 별명으로 불러달라던 그녀를 비롯해 남자 셋, 여자 셋 총 여섯 명의 오손도손한 한옥라이프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리는 함께 밥을 지어먹고, 술을 마시고, 얕기도 하고 깊기도 한 대화를 하고, 서로 장난을 치고, 함께 풍경을 나누며 가족이 되어갔다. 어떤 걸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어떨 때 귀여운지, 멋있는지 등을 발견하고 또 사진을 찍고 이야기해주었다. 관심을 기울여 서로를 보듬었다.
봄의 은근한 온기가 깃든 바닥에 여름이 열기를 더하고 이제는 풍성하게 무르익은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빛과 열기를 가슴에 채워넣고 나니 내 마음의 형태가 보이기 시작했다. 의연한 척, 괜찮은척했지만 나는 사람이 고팠었던 거였다. 나를 알아봐 줄, 내가 알아볼 당신들을 만나기 위해 그렇게 긴 시간 동안 힘들었나보다. 늘 당신을 그리고 당신들을 찾아 헤맸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찾아서 정말 다행이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내 어둠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어둠을 받아낼 수 있었다. 산사태로 돌아가셨던 외할머니를 통해 느꼈던 삶의 허무함. 치매를 앓던 할머니를 모실 때 볼꼴 못 볼 꼴을 다 보며 가졌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리고 애잔함. 중어중문학과, 축구기자, 의학전문대학원 시험준비, 코딩, 창업, 기획 등 갈피를 못 잡는 갈지자의 행보까지. 30여 년 인생의 에너지 고갈기록을 이제 눈물 없이 담담히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차가웠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준 당신 온기가 좋다. 이곳 온도가 좋다.
겨울이 다가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기약된 헤어짐의 시간이 다가온다. 그래서 더욱 함께하려 하고 또 매 순간이 소중하다. 정해진 일정 사이 얼마 없는 시간이더라도 함께 밥을 지어 먹고, 시장을 보러 가도, 머리를 깎으러 미용실에 가도, 영화를 봐도, 야경을 보러 가도, 늦은 밤 거실 마루에 앉아 오손도손 하루의 이야기를 나누고, 거의 하루 온종일 붙어있지만 계속 붙어 다니려 한다. 곁에 있고 싶고, 곁에 두고 싶다. 행복한 순간을 만들고 싶고 함께하고 싶다. 뭘 하는지 궁금하고, 어떤걸 좋아하는지, 어떤 걸 싫어하는지, 어떤 걸 필요로 하는지 계속 신경을 쓰게 된다. 이렇게 욕심을 부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마음이 커져간다.
마이너스의 감정이 토하듯 터져 나왔던 게 아주 아득히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으며 내가 그렇게 어두운 사람이었다는 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곤 한다. 노을빛에 따라 바뀌는 하늘과 구름의 빛깔처럼 나도 당신이란 이름의 빛으로 인해 색깔이 바뀌었을 뿐인데 말이다.
사람을 믿어야 한다고, 결국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머리로 생각해왔다. 그런데 마음이 움직이고 변화가 되고 있던 적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사람에 데인 적도, 차인 적도, 실망한 적도 많았다. 그래서 믿지 못했다. 나 자신조차 믿지 못했다. 실망을 안기기 싫었다. 그래서 다가설 수 없었다. 그런데도 해소되지 않는 존재의 허무함과 불안함, 외로움이 스스로 정한 한계를 깨야만 해소될 것 같았다. 그래서 머리로 되뇌었다. 사람을 믿어야, 사람을 사랑해야, 그리고 자신을 사랑해야 해결될 거라고. 그래서 잘 보이고 싶었고 잘하고 싶었다. 부담스러웠고 힘들었다. 그런데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괜찮다고, 잘했다고, 멋있다고, 귀엽다고 진심으로 혹은 과하게 표현해주는 당신들이 고마웠다. 생일이라고 일주일 동안 축하를 받을 일이 살면서 또 있을까. 마음에 빛이 가득 들어오니 알게 되었다. 나는 사람이 고팠고 사랑이 고팠었다. 그리고 사람을 좋아한다. 사랑을 좋아한다. 마음이 커지고 있다.
신은 우리에게 이겨낼 수 있는 어려움을 준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종의 숙제이자 시험인 셈이다. 정말 신이 있다면 참 얄궂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힘들었던 시기를 거치고 모든 문이 닫혔다고 생각했을 때마다 갑자기 뒤에서 스르륵 문 하나가 열린다. 늘 그래왔기에 신기하기도 하고 참 얄밉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엔 좀 많이 고맙다. 뭐 지금도 다시 숙제를 던져주고 있는 것 같다.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살기 위해, 사회에 나가 무언가 도움이 되기 위한 숙제를. 아직 온전치는 않지만, 사람들과 함께 힘을 합쳐 다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 정도의 에너지 관리는 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 계속할 수 있는 힘을 관리하는 방법을 익히고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브레이크를 걸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완벽한 쉼을 알고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방법을 알아간다. 계속할 수 있는 힘은 결국 나를 사랑할 줄 아는 힘. 그리고 내 안에 사랑이 가득해야 다른 사람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힘도 나오게 되는 법이다.
일도, 사랑도 계속할 수 있게 나를 잘 보살필 줄 아는 내가 되기를. 당신에게 계속 다가가 함께할 수 있게 되기를. 오늘 노을을 보지 못해도 내일의 노을이 다시 질 테니. 겨울이 오더라도 다시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이 차례로 다가올 테니. 계속 걸어가자. 계속 가자. 계속. 그러다 힘들면 잠깐 쉬고.
목포에 내려온 지 벌써 3주가 지났다. 은근한 온기로 겨울을 밀어내는 봄과 같은 시간을 보냈다. 얼굴에 그늘이 가득해 거울을 보기도 두려웠던 시절이 벌써 아득하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찍어준 사진과 영상을 보면 하나같이 웃고 있는 모습만 가득하다. 끝이 기약되어있는 나머지 3주의 시간이 벌써 아쉽고 생각조차 하기 싫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지금, 이 순간 순간에 충실할 뿐. 소중한 사람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아껴주는 것뿐.
목포행 기차에 몸을 싣던 그 날, 태풍이 남기고 간 짙은 먹구름이 잔뜩 껴있던 그날의 하늘처럼, 내 마음은 번민의 구름으로 가득했었다. 비가 흩뿌리던 300여 킬로미터의 기찻길을 달려 목포에 도착하자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햇살은 마치 세상에는 아직 빛이 남아있다는 희망을 안겨준 이 곳, “괜찮아마을”과 마을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계시 같은 그 무언가였는지도 모르겠다.
무기력의 바닥에서 어떻게든 힘을 쥐어짜 내어 간신히 자기소개를 하고 저녁으로 도시락을 먹었다. 오른쪽 귀에 말이 걸려왔다. 시작이었다. 순진한 어둠은 아주 작은 빛이 있어도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에겐 그 빛이 너무 소중했다. 고마웠다.
밥을 먹은 후 숙소를 정하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던 그 사람의 빛을 따라 맴돌았다. 그리고는 어디에 머물 거냐고, 함께 한옥에서 지내자고 설득했다. 그렇게 우리는 봄꽃이 피어오르는 집 춘화당에 함께 살게 되었다.
여름을 좋아해 썸머라는 별명으로 불러달라던 그녀를 비롯해 남자 셋, 여자 셋 총 여섯 명의 오손도손한 한옥라이프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리는 함께 밥을 지어먹고, 술을 마시고, 얕기도 하고 깊기도 한 대화를 하고, 서로 장난을 치고, 함께 풍경을 나누며 가족이 되어갔다. 어떤 걸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어떨 때 귀여운지, 멋있는지 등을 발견하고 또 사진을 찍고 이야기해주었다. 관심을 기울여 서로를 보듬었다.
봄의 은근한 온기가 깃든 바닥에 여름이 열기를 더하고 이제는 풍성하게 무르익은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빛과 열기를 가슴에 채워넣고 나니 내 마음의 형태가 보이기 시작했다. 의연한 척, 괜찮은척했지만 나는 사람이 고팠었던 거였다. 나를 알아봐 줄, 내가 알아볼 당신들을 만나기 위해 그렇게 긴 시간 동안 힘들었나보다. 늘 당신을 그리고 당신들을 찾아 헤맸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찾아서 정말 다행이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내 어둠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어둠을 받아낼 수 있었다. 산사태로 돌아가셨던 외할머니를 통해 느꼈던 삶의 허무함. 치매를 앓던 할머니를 모실 때 볼꼴 못 볼 꼴을 다 보며 가졌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리고 애잔함. 중어중문학과, 축구기자, 의학전문대학원 시험준비, 코딩, 창업, 기획 등 갈피를 못 잡는 갈지자의 행보까지. 30여 년 인생의 에너지 고갈기록을 이제 눈물 없이 담담히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차가웠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준 당신 온기가 좋다. 이곳 온도가 좋다.
겨울이 다가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기약된 헤어짐의 시간이 다가온다. 그래서 더욱 함께하려 하고 또 매 순간이 소중하다. 정해진 일정 사이 얼마 없는 시간이더라도 함께 밥을 지어 먹고, 시장을 보러 가도, 머리를 깎으러 미용실에 가도, 영화를 봐도, 야경을 보러 가도, 늦은 밤 거실 마루에 앉아 오손도손 하루의 이야기를 나누고, 거의 하루 온종일 붙어있지만 계속 붙어 다니려 한다. 곁에 있고 싶고, 곁에 두고 싶다. 행복한 순간을 만들고 싶고 함께하고 싶다. 뭘 하는지 궁금하고, 어떤걸 좋아하는지, 어떤 걸 싫어하는지, 어떤 걸 필요로 하는지 계속 신경을 쓰게 된다. 이렇게 욕심을 부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마음이 커져간다.
마이너스의 감정이 토하듯 터져 나왔던 게 아주 아득히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으며 내가 그렇게 어두운 사람이었다는 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곤 한다. 노을빛에 따라 바뀌는 하늘과 구름의 빛깔처럼 나도 당신이란 이름의 빛으로 인해 색깔이 바뀌었을 뿐인데 말이다.
사람을 믿어야 한다고, 결국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머리로 생각해왔다. 그런데 마음이 움직이고 변화가 되고 있던 적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사람에 데인 적도, 차인 적도, 실망한 적도 많았다. 그래서 믿지 못했다. 나 자신조차 믿지 못했다. 실망을 안기기 싫었다. 그래서 다가설 수 없었다. 그런데도 해소되지 않는 존재의 허무함과 불안함, 외로움이 스스로 정한 한계를 깨야만 해소될 것 같았다. 그래서 머리로 되뇌었다. 사람을 믿어야, 사람을 사랑해야, 그리고 자신을 사랑해야 해결될 거라고. 그래서 잘 보이고 싶었고 잘하고 싶었다. 부담스러웠고 힘들었다. 그런데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괜찮다고, 잘했다고, 멋있다고, 귀엽다고 진심으로 혹은 과하게 표현해주는 당신들이 고마웠다. 생일이라고 일주일 동안 축하를 받을 일이 살면서 또 있을까. 마음에 빛이 가득 들어오니 알게 되었다. 나는 사람이 고팠고 사랑이 고팠었다. 그리고 사람을 좋아한다. 사랑을 좋아한다. 마음이 커지고 있다.
신은 우리에게 이겨낼 수 있는 어려움을 준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종의 숙제이자 시험인 셈이다. 정말 신이 있다면 참 얄궂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힘들었던 시기를 거치고 모든 문이 닫혔다고 생각했을 때마다 갑자기 뒤에서 스르륵 문 하나가 열린다. 늘 그래왔기에 신기하기도 하고 참 얄밉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엔 좀 많이 고맙다. 뭐 지금도 다시 숙제를 던져주고 있는 것 같다.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살기 위해, 사회에 나가 무언가 도움이 되기 위한 숙제를. 아직 온전치는 않지만, 사람들과 함께 힘을 합쳐 다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 정도의 에너지 관리는 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 계속할 수 있는 힘을 관리하는 방법을 익히고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브레이크를 걸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완벽한 쉼을 알고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방법을 알아간다. 계속할 수 있는 힘은 결국 나를 사랑할 줄 아는 힘. 그리고 내 안에 사랑이 가득해야 다른 사람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힘도 나오게 되는 법이다.
일도, 사랑도 계속할 수 있게 나를 잘 보살필 줄 아는 내가 되기를. 당신에게 계속 다가가 함께할 수 있게 되기를. 오늘 노을을 보지 못해도 내일의 노을이 다시 질 테니. 겨울이 오더라도 다시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이 차례로 다가올 테니. 계속 걸어가자. 계속 가자. 계속. 그러다 힘들면 잠깐 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