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달도, 우리는 어쩌면 모두 배 아니면 섬일지도.
│ 그대로 머물러 준다면, 그렇게 다가갈 수 있다면
(2018.11.18 외달도 여행에 다녀온 뒤 남긴 일기)
울렁거리는 마음이
당신에게 닿았을 때
오늘은 목포 <괜찮은 마을>에서 보내는 첫 주말. 괜찮은 사람들과 떠나는 첫 소풍날이었다. 바비(식사 담당)인 나는 어젯밤 수요조사를 마친 김밥을 주문하기 위해 조금 일찍 눈을 떴다. 퉁퉁 부운 눈을 비비며 채팅창을 확인하며 전화를 걸었다. "그냥 김밥 3줄, 참치 김밥 6줄, 치즈 김밥 3줄. 9시까지 찾으러 갈게요."
춘화당 사람들은 들뜬 마음을 감추지 않고서 차가운 마룻바닥을 쿵쿵 거리며 분주한 아침을 보냈다.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삼삼오오 마당에 모이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이제는 더듬지 않고도 서로의 이름과 얼굴을 떠올리게 된 우리였다.
배를 탄다니, 외달도라니. 이름마저 새롭고 낯선, 섬이라는 공간을 가게 된다니 가슴이 뛰었다.ㅡ 사실, 전날 밤잠을 설쳤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알아가는 일은 즐겁고 활력을 주었지만, 내게는 그만큼 많은 긴장을 요하는 일이었다. 아직은 어색한 벽지와 어딘가 불편한 새 잠자리. 이제 막 조금씩 익숙함을 찾아가고 있는데 섬을 가야 한다니. 설익은 얼굴들이 다시 한번 낯선 공간에 닿을 때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설렘과 함께 옅은 긴장감에 가슴이 뛰었다.
게다가 나는 작은 흔들거림에도 멀미가 나는 사람. 마당을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룸메이트가 챙겨준 멀미약을 두고 나왔음을 알아차리자마자 서둘러 걸음을 돌렸다. 작은 멀미 약병이 묘약이라도 되는 양 꽉 쥐고 있다가 땡, 상선 30분 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모두 마셔버렸다. 울렁이는 마음 모두 삼켜버리고서 닿게 될 미지의 섬, 당신을 기대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고양이처럼
상선과 하선까지의 시간은 겨우 40분 남짓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컸던 배는 커다란 고동소리와 "존경하는 -주민 여러분" 정겨운 방송 소리로 가득 채워지며 육지와 조금씩 멀어져 갔다. 배 안에는 함께 올라탄 괜찮은 마을 입주자들뿐만 아니라 배가 정박하는 섬들의 주민들이 함께였다. 더러는 익숙하지 않은 표정으로, 더러는 그저 무료한 표정으로 밀려오는 파도와 바람을 마주하고 있었다. 나는 그 가운데 서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물보라를 빤히 바라보았다. 다만, 나는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아마도 생경함과 경직, 그 중간이 아니었을까.
멀미약의 효능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간은 시원한 바람에 머리칼을 휘날리며 열심히 사진을 남겼지만 오래지 않아서 선내 바닥,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드러눕고 말았다. 바닥에 맞닿은 등에 배의 울림이 가득히 전해지는 것을 느끼며.
다른 정박지와 마찬가지로 "존경하는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방송과 함께 우리는 외달도에 닿았다. 외달도. 어쩐지 이름부터 외로워 보이는 작은 섬. 30가구 정도가 삶을 이루고 살고 있다는 곳. 지극히 사적인 삶의 자리에 외인이 되어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배를 타고서 들어왔다가 다시 뱃고동 소리와 함께 사라졌을까.
정박지와 멀어져 섬의 안쪽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바다는 다른 느낌의 논과 밭이 이어졌다. 드문드문 밭일을 매는 어르신들과 어디론가 이동 중인 경운기가 보였다. 저 멀리서 보았을 때는 그저 작은 점처럼 보이던 이곳에 매일 치열하게, 우리와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닿기 전까지만 해도 나와는 전혀 관계없이, 전혀 닮아 있지 않은 곳이라고 느꼈지만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언젠가,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는 풍경들이 이어졌다.
마침내 목적지인 외달도 내 한옥민박집에 닿았다. 바다로 둘러싸인 그곳에 자리를 잡고서 우리는 김밥을 펼쳤고 컵라면에 물을 부었다. 쉬지 않고 터지는 셔터 소리를 배경으로 젓가락을 갈랐고 시원한 바람을 물 대신 마시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입안에 밀어 넣었다. 식사 이후로는 돌아가는 배 시간까지 자유시간이었다. 돌아볼 만한 지점을 표시해둔 지도를 공유해주었지만 나는 민박집 반경 몇 미터 내외로는 움직이지 않았다.
무엇이든 해나갈 자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전날 오전 일정이었던 <좀 놀아본 언니> 상담에서 내게 준 처방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 나를 좁은 틀 안에 가두고 그 안에서 쉼 없이 움직여야만 했던 나에게 정말로 필요했던 건 자유였는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필요로 했던 처방을 익숙한 공간이 아닌 낯설고도 낯선 외달도에서 받고 나니, 그 문장의 무게가 더 깊게 훅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멀미약까지 챙겨 먹고 배를 타고 들어온 외달도에서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앉고 싶은 곳에 앉고 눕고 싶은 곳에 돗자리를 펴 눕고서는 잠에 들었다. 너무 추워 더는 움직이지 않을 수 없을 때서야 쫓겨나듯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주위를 돌아보니 같은 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은 절반이 절반도 되지 않았다. 모두 제한된 시간 내에 조금이라도 더 둘러보기 위해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남은 사람들 마저도 하나둘 어디론가 향하고 나니 다시 조바심이 났다. "그래도 나, 어디라도 돌아다녀야 하지 않을까?"
어슬렁어슬렁 뒤늦은 걸음을 옮겼지만 그것도 이내 포기했다. 춥고 귀찮아서 몇 걸음 안돼서 다시 걸음을 돌려 한옥민박집 매점에 들어가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샀다. 밖으로 나오는 길에 고양이들을 만났다. 파란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볓 좋은 곳을 찾아 교대로 몸을 누인 고양이들. 길게 몸을 늘어뜨리며 광합성 중인 고양이들 가운데 하나가 어슬렁어슬렁 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마치 말이라도 걸려는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거봐. 아무나 하는 게 아니지?"
나는 늘 <이왕이면>이라는 수식으로 수많은 크고 작은 결심으로 나를 등 떠밀어왔다. 물론 그런 결심이 없었다면 나는 이곳에 닿지 못했겠지. 그럼에도 더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곳, 목포에서만큼은. 내게 허락된 6주라는 시간, 2018년의 끝자락에서만큼은. 어렵겠지만 <이번만큼은>이라며 볕 좋은 곳을 찾아 늘어지는 오후를 보내는 고양이들처럼, 우아하고도 게으른 나날을 보내고 싶어 졌다.
우리의 간격 사이로
무르익을 무수한 의미들
결국 다시 돌아갈 뱃시간이 다되도록 나는 새로운 걸음을 떼지 않았다. 다만, 한자리에 오래도록 머물며 멀리서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했다. 그들이 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본 작은 파도와 모래 위에 새긴 문장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활짝 웃기도 했고 짐짓 심각해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하늘은 자연스레 짙어져가고 있었다.
다시 선착장에 도착해 돌아가는 표를 받으며 아쉬움이 남기도 했으나, 올해가 가기 전 다시 들러준다면 기꺼이 민박을 제공해주겠다는 사장님의 약속을 떠올리며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처음은 어려웠지만 돌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커다란 뱃고동 소리를 들으며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흔들리는 갑판대 위에서도 난관을 붙잡으며 중심을 잡았다. 낮보다 거세지는 파도와 차가워진 바람도 그런대로 좋았다. 무엇보다 무르익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는 일은 서울에서나 머나먼 이곳, 목포에서나 마찬가지로 참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느끼자, 긴장이 한층 더 풀렸다.
외달도로 들어가는 길만 생각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챙기지 못했던 멀미약도 필요 없었다. 선내에 나란히 누워 서로의 옆모습만 바라보며 나누는 진솔한 대화가 울렁거리는 마음을 잔잔히 붙잡아주었기 때문이었다. 고작 며칠을 함께했을 뿐인데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우리는 "나도 그래요. 우리 정말 비슷해요."를 연발하며 닮은 구석을 발견했다. 정말 거짓말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들의 입을 통해 듣는 일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 우리는 서로 외따로운 섬이었다. '그곳엔 무엇이 있을까.' 호기심보다는 '거기엔 내가 찾는 게 없을 거야.'라는 서늘한 확신만이 있었다. 굳이 울렁이는 마음을 가지고 다가가야 할까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는 굳이 울렁이고 위태로운 마음을 가지고 서로에게 다가가고 기다렸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닮아있는 우리를 발견했다. 기쁨을 알고 슬픔을 아는, 상처를 터놓고 위로를 건넬 줄 아는 우리를.
그 "굳이"라는 것은 이곳, <괜찮은마을>이 그래야만 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빠르고 정확한 길을 돌아서 굳이 긴 시간을 들여 가는 곳. 명확한 것들을 찾는 게 아닌 애매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찾아 모인 곳이기에.
나는 앞으로의 우리가 어떤 나날들을 마주하며 서로의 섬에 다가갈 수 있을지, 당신과 나라는 섬 사이의 바다와 하늘 위에는 어떤 색으로 물이 들어갈지 궁금해졌다.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알아가고 싶어졌다.
처음으로 올리는 일기는 조금 늦은 <외달도 여행>, 저는 괜찮아마을에 입주한 뒤부터 매일(은 아니지만) 조금 긴 이야기를 꾸준히 남기고 있어요. 수료식 이후, 카카오브런치에 괜찮아마을 일기를 정식 연재하려고 하고 있어요. 오늘 외달도 영상 나레이션 작업을 하다가, 여행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이곳에 올려봐요.
여러분의 일기를 보며 같은 시간 속에서 서로 다른 것을 느끼고 본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며. 이 순간들이 모두에게 내내 잊혀지지 않을 소중한 기록으로 남겨지기를 바라요. (모두 애정해요.) 종종 일기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ㅠ^)/
외달도, 우리는 어쩌면 모두 배 아니면 섬일지도.
│ 그대로 머물러 준다면, 그렇게 다가갈 수 있다면
(2018.11.18 외달도 여행에 다녀온 뒤 남긴 일기)
울렁거리는 마음이
당신에게 닿았을 때
오늘은 목포 <괜찮은 마을>에서 보내는 첫 주말. 괜찮은 사람들과 떠나는 첫 소풍날이었다. 바비(식사 담당)인 나는 어젯밤 수요조사를 마친 김밥을 주문하기 위해 조금 일찍 눈을 떴다. 퉁퉁 부운 눈을 비비며 채팅창을 확인하며 전화를 걸었다. "그냥 김밥 3줄, 참치 김밥 6줄, 치즈 김밥 3줄. 9시까지 찾으러 갈게요."
춘화당 사람들은 들뜬 마음을 감추지 않고서 차가운 마룻바닥을 쿵쿵 거리며 분주한 아침을 보냈다.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삼삼오오 마당에 모이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이제는 더듬지 않고도 서로의 이름과 얼굴을 떠올리게 된 우리였다.
배를 탄다니, 외달도라니. 이름마저 새롭고 낯선, 섬이라는 공간을 가게 된다니 가슴이 뛰었다.ㅡ 사실, 전날 밤잠을 설쳤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알아가는 일은 즐겁고 활력을 주었지만, 내게는 그만큼 많은 긴장을 요하는 일이었다. 아직은 어색한 벽지와 어딘가 불편한 새 잠자리. 이제 막 조금씩 익숙함을 찾아가고 있는데 섬을 가야 한다니. 설익은 얼굴들이 다시 한번 낯선 공간에 닿을 때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설렘과 함께 옅은 긴장감에 가슴이 뛰었다.
게다가 나는 작은 흔들거림에도 멀미가 나는 사람. 마당을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룸메이트가 챙겨준 멀미약을 두고 나왔음을 알아차리자마자 서둘러 걸음을 돌렸다. 작은 멀미 약병이 묘약이라도 되는 양 꽉 쥐고 있다가 땡, 상선 30분 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모두 마셔버렸다. 울렁이는 마음 모두 삼켜버리고서 닿게 될 미지의 섬, 당신을 기대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고양이처럼
상선과 하선까지의 시간은 겨우 40분 남짓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컸던 배는 커다란 고동소리와 "존경하는 -주민 여러분" 정겨운 방송 소리로 가득 채워지며 육지와 조금씩 멀어져 갔다. 배 안에는 함께 올라탄 괜찮은 마을 입주자들뿐만 아니라 배가 정박하는 섬들의 주민들이 함께였다. 더러는 익숙하지 않은 표정으로, 더러는 그저 무료한 표정으로 밀려오는 파도와 바람을 마주하고 있었다. 나는 그 가운데 서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물보라를 빤히 바라보았다. 다만, 나는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아마도 생경함과 경직, 그 중간이 아니었을까.
멀미약의 효능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간은 시원한 바람에 머리칼을 휘날리며 열심히 사진을 남겼지만 오래지 않아서 선내 바닥,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드러눕고 말았다. 바닥에 맞닿은 등에 배의 울림이 가득히 전해지는 것을 느끼며.
다른 정박지와 마찬가지로 "존경하는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방송과 함께 우리는 외달도에 닿았다. 외달도. 어쩐지 이름부터 외로워 보이는 작은 섬. 30가구 정도가 삶을 이루고 살고 있다는 곳. 지극히 사적인 삶의 자리에 외인이 되어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배를 타고서 들어왔다가 다시 뱃고동 소리와 함께 사라졌을까.
정박지와 멀어져 섬의 안쪽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바다는 다른 느낌의 논과 밭이 이어졌다. 드문드문 밭일을 매는 어르신들과 어디론가 이동 중인 경운기가 보였다. 저 멀리서 보았을 때는 그저 작은 점처럼 보이던 이곳에 매일 치열하게, 우리와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닿기 전까지만 해도 나와는 전혀 관계없이, 전혀 닮아 있지 않은 곳이라고 느꼈지만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언젠가,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는 풍경들이 이어졌다.
마침내 목적지인 외달도 내 한옥민박집에 닿았다. 바다로 둘러싸인 그곳에 자리를 잡고서 우리는 김밥을 펼쳤고 컵라면에 물을 부었다. 쉬지 않고 터지는 셔터 소리를 배경으로 젓가락을 갈랐고 시원한 바람을 물 대신 마시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입안에 밀어 넣었다. 식사 이후로는 돌아가는 배 시간까지 자유시간이었다. 돌아볼 만한 지점을 표시해둔 지도를 공유해주었지만 나는 민박집 반경 몇 미터 내외로는 움직이지 않았다.
전날 오전 일정이었던 <좀 놀아본 언니> 상담에서 내게 준 처방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 나를 좁은 틀 안에 가두고 그 안에서 쉼 없이 움직여야만 했던 나에게 정말로 필요했던 건 자유였는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필요로 했던 처방을 익숙한 공간이 아닌 낯설고도 낯선 외달도에서 받고 나니, 그 문장의 무게가 더 깊게 훅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멀미약까지 챙겨 먹고 배를 타고 들어온 외달도에서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앉고 싶은 곳에 앉고 눕고 싶은 곳에 돗자리를 펴 눕고서는 잠에 들었다. 너무 추워 더는 움직이지 않을 수 없을 때서야 쫓겨나듯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주위를 돌아보니 같은 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은 절반이 절반도 되지 않았다. 모두 제한된 시간 내에 조금이라도 더 둘러보기 위해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남은 사람들 마저도 하나둘 어디론가 향하고 나니 다시 조바심이 났다. "그래도 나, 어디라도 돌아다녀야 하지 않을까?"
어슬렁어슬렁 뒤늦은 걸음을 옮겼지만 그것도 이내 포기했다. 춥고 귀찮아서 몇 걸음 안돼서 다시 걸음을 돌려 한옥민박집 매점에 들어가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샀다. 밖으로 나오는 길에 고양이들을 만났다. 파란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볓 좋은 곳을 찾아 교대로 몸을 누인 고양이들. 길게 몸을 늘어뜨리며 광합성 중인 고양이들 가운데 하나가 어슬렁어슬렁 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마치 말이라도 걸려는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거봐. 아무나 하는 게 아니지?"
나는 늘 <이왕이면>이라는 수식으로 수많은 크고 작은 결심으로 나를 등 떠밀어왔다. 물론 그런 결심이 없었다면 나는 이곳에 닿지 못했겠지. 그럼에도 더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곳, 목포에서만큼은. 내게 허락된 6주라는 시간, 2018년의 끝자락에서만큼은. 어렵겠지만 <이번만큼은>이라며 볕 좋은 곳을 찾아 늘어지는 오후를 보내는 고양이들처럼, 우아하고도 게으른 나날을 보내고 싶어 졌다.
우리의 간격 사이로
무르익을 무수한 의미들
결국 다시 돌아갈 뱃시간이 다되도록 나는 새로운 걸음을 떼지 않았다. 다만, 한자리에 오래도록 머물며 멀리서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했다. 그들이 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본 작은 파도와 모래 위에 새긴 문장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활짝 웃기도 했고 짐짓 심각해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하늘은 자연스레 짙어져가고 있었다.
다시 선착장에 도착해 돌아가는 표를 받으며 아쉬움이 남기도 했으나, 올해가 가기 전 다시 들러준다면 기꺼이 민박을 제공해주겠다는 사장님의 약속을 떠올리며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처음은 어려웠지만 돌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커다란 뱃고동 소리를 들으며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흔들리는 갑판대 위에서도 난관을 붙잡으며 중심을 잡았다. 낮보다 거세지는 파도와 차가워진 바람도 그런대로 좋았다. 무엇보다 무르익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는 일은 서울에서나 머나먼 이곳, 목포에서나 마찬가지로 참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느끼자, 긴장이 한층 더 풀렸다.
외달도로 들어가는 길만 생각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챙기지 못했던 멀미약도 필요 없었다. 선내에 나란히 누워 서로의 옆모습만 바라보며 나누는 진솔한 대화가 울렁거리는 마음을 잔잔히 붙잡아주었기 때문이었다. 고작 며칠을 함께했을 뿐인데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우리는 "나도 그래요. 우리 정말 비슷해요."를 연발하며 닮은 구석을 발견했다. 정말 거짓말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들의 입을 통해 듣는 일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 우리는 서로 외따로운 섬이었다. '그곳엔 무엇이 있을까.' 호기심보다는 '거기엔 내가 찾는 게 없을 거야.'라는 서늘한 확신만이 있었다. 굳이 울렁이는 마음을 가지고 다가가야 할까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는 굳이 울렁이고 위태로운 마음을 가지고 서로에게 다가가고 기다렸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닮아있는 우리를 발견했다. 기쁨을 알고 슬픔을 아는, 상처를 터놓고 위로를 건넬 줄 아는 우리를.
그 "굳이"라는 것은 이곳, <괜찮은마을>이 그래야만 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빠르고 정확한 길을 돌아서 굳이 긴 시간을 들여 가는 곳. 명확한 것들을 찾는 게 아닌 애매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찾아 모인 곳이기에.
나는 앞으로의 우리가 어떤 나날들을 마주하며 서로의 섬에 다가갈 수 있을지, 당신과 나라는 섬 사이의 바다와 하늘 위에는 어떤 색으로 물이 들어갈지 궁금해졌다.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알아가고 싶어졌다.
처음으로 올리는 일기는 조금 늦은 <외달도 여행>, 저는 괜찮아마을에 입주한 뒤부터 매일(은 아니지만) 조금 긴 이야기를 꾸준히 남기고 있어요. 수료식 이후, 카카오브런치에 괜찮아마을 일기를 정식 연재하려고 하고 있어요. 오늘 외달도 영상 나레이션 작업을 하다가, 여행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이곳에 올려봐요.
여러분의 일기를 보며 같은 시간 속에서 서로 다른 것을 느끼고 본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며. 이 순간들이 모두에게 내내 잊혀지지 않을 소중한 기록으로 남겨지기를 바라요. (모두 애정해요.) 종종 일기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