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인 사람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괜찮지 않은데 자꾸 괜찮다는 말로 위로하는 것도 싫었다. 나는 지옥에 있는데 네가 겪어보기는 했는가. 점점 악만 남게 되었다. 이런 내게 괜찮아마을은 싫어하는 단어로 가득한 곳이었다. 철저히 이상주의적 사람들이 모인 것 같았다. 그럼에도 이곳에 왔다. 인생을 재설계해 보라는 말이 가슴에서 떠나질 않았기 때문이다. 첫날 나를 마주한 가은씨가 좋은 룸메이트를 만났다고 기뻐할 때 걱정이 앞섰다. ‘가은씨… 전 괜찮은 사람이 아닌데 어쩌려고 그러세요……..’
목포에서 집들이를 한 지 1달이 지났다. 100일 전에는 잡지사 막내(나이로)였는데, 여기서는 편집장을 맡았다. 할 수 있다고. 잘해보겠다고 고집을 부렸는데, 잘하고 있는진 모르겠다. 팀원들 덕에 매일 조금씩 무언가를 해내고 있긴 하다. 올해 말까지 우린 두 권의 책을 낼 예정이다. 대표를 맡은 세심사도 그렇다. 무사히 끝낸 괜찮아마을 졸업, 목포시 청년 창업에서 받은 지원금, 소셜벤처 아카데미에서 수상까지. 이외에도 공간을 계약하고, 사업자 등록도 마치고- 작고 재미있는 일을 꾸미는 중이다. 모두 다 다정하고 똑똑한 팀원들 덕이다. (세심사의 마음목욕탕 12월 커밍쑨)
금요일, 원고를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전주로 도망 왔다. 오랜만에 만난 코코와 감격스러운 인사를 하며, 몰골이 왜 그렇냐는 엄마아빠의 질문에 머쓱한 웃음만 남기고 이내 침대에 누웠다. 길게 잠을 자다가 코코가 낑낑대는 소리에 깼다. 그제야 집에 왔구나 실감이 났다. 휴대폰을 찾으려 고개를 돌리니 양파가 있었다. 양파. 3주간의 매거진섬 취재가 끝난 뒤, 긴장이 풀린 것인지 몸이 아팠다. 자다가도 헛구역질과 함께 기침이 났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눈물이 주룩주룩 나기도 했다. 한 달째 낫지 않는 눈병은 덤이다. 엄마는 내게 양파를 주변에 두면 기침이 멎는다고 말했다. 웃기지만 진짜 기침이 멎었다. 자다 깨는 일도 없었다.
요새는 온종일 정신없이 바쁘다. 나뿐만 아니라 로라에 있는 모든 팀원이 그렇다. 그래도 일을 하다 잠깐 들려 이름을 부르면, 그들은 따뜻하게 맞아준다. 서로를 토닥여주는데 익숙한 사람들. 나는 어리광을 부리다 다시 자리로 돌아간다. 열심히 일하는 팀원들을 보며 생각한다. 우리가 진행하는 일이 잘될지 망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재밌으니 됐다. 나 정말 괜찮게 살아가는 중이다.
‘가은씨… 전 괜찮은 사람이 아닌데 어쩌려고 그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