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었던, 모든 이야기

누가 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당신이 보고 싶어 열어놨어요.

늦은 일기 / 2018년 8월 28일 화요일

츤츤
2018-09-03
조회수 2416

매일 글을 쓰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빠듯하다. 아마도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서로를 알아가며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도 갖고 있는 듯하다.

앞으로 짧은 시간을 쪼개가며 어떻게 글을 쓰고 남겨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간 썼던 글을 일단은 올려 보려고 한다.

무엇이든 시작이 반이니까.

일단 쓰고 남기다보면 글은 더 좋아지니까.




D-Day / 첫째날

거무룩한 서울하늘을 뒤로한채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기찻길을 달려 전라남도의 땅 끝 종점 목포역에 도착했다. 늘상 틀리는 일기예보를 비웃기라도하듯 목포의 날씨는 화창하다못해 뜨겁게 햇살이 빛났다. 간간이 바닷바람이 불어와 열기를 식혀주었다. 6주 동안 이 곳에서 생활할 짐이 든 캐리어를 끌고 집결지인 까페 로라로 걸음을 옮겼다. 


마치 서울의 명동거리를 걷는듯한 느낌의 좁은 골목과 블록들 사이로 파리바게뜨, 올리브영, 메가박스 등 익숙한 브랜드의 간판들이 이곳은 번화가였다고 말하는 증거처럼 서있었다. 그러나 묘하게 한산한 거리는 신기하면서도 뭔가 이상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걸음을 옮길수록 옛날 간판들과 건물임대를 알리는 스티커가 보이는 와중에 로라에 도착했다. 괜찮아 마을에 선발된 사람들 사이에 어색한 인사와 그 어색함을 풀기위한 약간의 대화가 오고갔다. 면접때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된 사람들은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아쉽게도 나와 함께 면접을 보았던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어색함이 목까지 차올랐을때 마침 다행히도 숙소탐방이 시작되었다.


뜨거운 태양을 피해 건물이 드리운 그림자를 찾아다니며 목포의 구도심을 거닐었다. 공장공장의 낭망청년 동우님이 숙소탐방 겸 목포 가이드를 해주었다. 목포는 일본인들이 간척하여 만들어진 항구도시였다. 그래서인지 이 곳에는 옛날 모습이 남아있는 건물들이 곳곳에 숨어있었다. 일제 시대때 만들어진 절을 비롯하여 근대화시기 찬란했던 목포의 경제력을 대변하는 국내 최초의 백화점 건물 등 살아 숨쉬는 문화재들이 눈길을 붙들었다. 적산가옥, 적군의 재산이었던 가옥들. 그리고 옛날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건축자재를 덧대어 만들어진 독특한 구조의 건축물들. 건물 사이 좁은 골목, 갑옷처럼 둘러싸인 건물의 외벽을 지나자 낡은 창고건물이 나타났다. 일제강점기 겨울군복에 들어갈 목화솜을 수탈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던 이 버려진 창고는 목포의 살아있는 역사를 대변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목포 옆 앞 거리, 명동과 유사한 느낌이 들었던 건 길거리와 블록 역시도 일본이 만들었던 도시구획을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이리라.


이런 목포에 옛스런 모습만 남아있는건 아니었다. 마치 성수동의 그 이질적인 분위기처럼 이 곳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가끔씩 보이는 리모델링된 까페 그리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립영화관까지. 아직은 미미하지만 조금씩 변화는 시작되고 있는듯 했다. 


목포의 구도심은 그리 넓지 않은 편이었기에 숙소는 세 곳 모두 로라를 중심으로 걸어서 5~10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그리고 간척으로 만들어진 지역이다보니 땅이 편평하여 걷기도 참 좋았다. 숙소는 세 곳 모두 각각 다른 인상을 주었는데 매력이 참 달라서 어디를 가도 재밌게 6주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도시에 있는 셰어하우스 느낌의 깔끔함과 옥탑방의 낭만이 있던 게스트하우스 ‘등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여관에 젊은 감성을 더해 리모델링 해 마치 성수동에 있는 까페처럼 바꾼 ‘우진장’, 목포의 관아였고 이제는 가장 예쁜 한옥으로 남아있는 ‘목포 1935 춘화당’ 까지. 각 숙소의 매력이 너무 달라 어떤 숙소에 묵어야할지 참 고민이 많았다. 처음에는 ‘우진장’ 의 자유로움과 곳곳에 숨어있는 아기자기한 공간들이 마음에 들었으나 고즈넉한 분위기의 한옥이 주는 조용한 포근함에 마음을 사로잡히고 말았다.


투어를 마치고 간단한 OT를 하며 앞으로 어떤 일들이 있을 건지, 어떻게 생활해야하는지를 들었다. 그리고는 간단한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어떤 말을 해야하는지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머리가 하얘졌다. 여유롭게 혹은 담담하게, 개성있게, 유쾌하게 자기소개를 하는 사람들 속에 차분하게 그리고 다행히 소개를 끝마쳤다. 자신의 별명으로 불릴 단어를 고민고민하다가 “츤츤” 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되고싶은 모습을 담은 단어를 생각해볼까 했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고등학교때의 별명인 “밥사”도 나를 잘 설명하는 느낌은 아니어서 그 별명을 쓰고싶지 않았다. 최근에 독서모임에서 츤데레 느낌이 난다고 들었던 평가가 기억나서 생소하지만 저런 별명을 지었다.


자기소개가 끝나고 도시락을 받아 저녁을 먹었다. 아직은 어색함이 있었던 차에 옆에 앉아있던 분이 말을 걸어왔다. UI/UX를 하는 디자이너라 말이 잘 통했다. 개발 공부를 좀 더 해보려고 한다고, 함께 해보자는 이야기를 듣고는 사실 살짝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나 역시도 공부가 필요한 상황이라 목표의식과 책임감이 생기면 괜찮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덕분에 한결 편안한 마음이 들었고 맛있게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다.


저녁시간이 끝나고 대망의 숙소를 정하는 시간이 되었다. 각자 마음에 드는 숙소를 종이에 적어냈다. 저녁을 함께했던 디자이너 세솔님과 약간의 상의와 설득을 더해 숙소를 춘화당으로 적어냈다. 춘화당에 사람들이 몰릴거라고 예상했는데 오히려 우진장의 경쟁률이 치열했다. 가위바위보와 자발적 이동으로 다들 자신의 숙소를 배정받고 각자 뿔뿔이 숙소로 이동했다.


노잼 지웅님, 나부랭이 상천님, 썸머 세솔님, 방문 수연님, 식탐 (진)주님 그리고 나 이렇게 여섯명은 춘화당 본채에 그리고 옆 건물 별채에도 여섯명 이렇게 총 열두명이 춘화당에서 지내게 되었다. 간단한 안내사항이 전달된 후, 우리 모둠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피곤하기도 했고 다음날 아침 9시에 상담이 잡혀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목포의 첫번째 밤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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