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계기로 목포에 정착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대한 홍동우 대표의 답변이다. 홍 대표는 언젠가 반드시 지친 청년들이 쉬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실패해도 괜찮은 실험 공간을 만들 계획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홍동우, 박명호 두 공동대표가 진행한 제주 팝업 게스트하우스 '한량유치원'의 입주자였던 강제윤 시인이 20년 동안 공간을 대여해주겠다 제안했고 아무 연고도 없는 목포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렇게 우연히 정착한 지역, 목포에서 '여행처럼 사는 마을' 괜찮아마을이 탄생했다.
2018년 7월 1기 30명의 입주자를 시작으로 2018년 11월 2기 30명, 2019년 10월 16명의 청년이 괜찮아마을을 거쳐 갔다. 김송미 입주자는 괜찮아마을의 청년들의 삶과 공동체 생활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다행(多行)이네요>를 제작하기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무엇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그래서 위로받은 마을에서 다시 자신들이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간 청년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언젠가 다시 목포에 가고 싶어'라고.
떠난 이들이 그리워하는 고향 같은 마을. 어떻게 이 마을은 길 잃은 청년들의 고향이 될 수 있었을까? 괜찮아마을 홍동우 공동대표를 찾아가 그 비결을 들어보았다.
똑똑똑- 소문 듣고 왔습니다.
Q. 여기가 청년들의 마음의 안식처 맞나. 그렇다. 고향 같은 곳이 되었으면 하는 의도로 괜찮아마을을 만들고 있다. 사람들이 언제든지 와서 지내고 갈 수 있는 고향 같은 공간 말이다.
수도권 인구가 50%를 넘는다.(참고 : 지난 6월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 인구는 2,596만 명, 비수도권 인구는 2,582만 명으로 집계됐다.) 지방 출신 청년들은 고향에 대한 감성이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그리고 앞으로는 더더욱 돌아갈 곳 없는 청년들이 늘어날 것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재건축, 재개발로 없어졌다. 옛날에 느꼈던 감정도 찾아볼 수 없고 내가 고향이라고 불러야 할 마을도 없어졌다. 갈수록 나 같은 친구들이 많아진다. 나는 우리 청년 세대들이 고향이 없는 세대라고 보고 있다.
청년 문제도 굉장히 심각하다. 예전에 여행사를 하면서 많은 청년과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내가 만든 건 여행사였지만 사실 '여행프로그램'으로 정의할 수 없는 성격이었던 것 같다. 같이 음악을 듣고, 모닥불을 피워 놓고 이야기하고, 눈물도 쏟고, 서로 위로하고…. 여행했던 친구들이 3개월, 6개월, 1년이 지나도 친목 관계를 유지했다. 이러한 관계들이 형성되는 걸 보면서 '우리가 여행하는 이유는 어쩌면 치유의 목적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정신과를 방문해 상담받고 치료받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정신과 방문의 문턱이 너무 높다.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서 노래 한 곡 부르는 것과 정신과에 가서 우울증약을 처방받는 것의 차이가 너무 크다. 그래서 자살률 1위 국가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병원을 못 가서 죽음을 선택하는 나라이다. 나는 죽음 대신에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무언가를 제시하고 싶었다.
Q. 괜찮아마을에 참가한 사람들의 절반가량이 목포에 정착했다는데… 사실 이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괜찮아마을은 지역에 청년들이 살아보는 경험을 주고 이들을 다시 돌아가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목포에 남게 하는 게 목표는 아니었다. 처음부터 목표를 정착에 두지 않았으니 성과가 아니라 부수적인 결과이다. 70명이든, 80명이든 괜찮아마을을 수료하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게 되고 다시 다른 일을 도전해볼 수 있는 마음, 여유가 생긴다면 이후 그 사람이 어느 곳에 정착하는지는 상관이 없다. 뜻밖에도 30여 명의 친구가 남았다. 이들과 마을을 이루고 살아간다는 것은 새로운 결과였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 괜찮아마을 운영 후 전국적으로 지역 살이 프로그램이 많아지고 있는데, 현재 청년들의 성향이 반영되지 않았다. 청년들은 노마드적 성향이 강하다. 한 곳에 연고를 두지 않고 배낭 하나,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세상 어디든 돌아다니면서 일할 수 있다. 지금 어느 지역에 30명, 40명이 남아있다는 건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목포라는 지역을 몇 명이나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살다가 지쳤을 때 돌아갈 곳으로 생각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몇 명이 있고, 이때 동시 거주자가 몇 명 있다는 수치가 더 유의미하고 본다. 떠날 사람은 떠나고 올 사람은 오고. 우리는 고향 생태계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남았다'라는 표현보다는 '괜찮아마을이 갖추고 있는 인프라와 프로그램이 지금은 30명의 동시 거주자를 유지할 수 있게 한다'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온라인 서비스를 예로 들자면, 동시 접속자 같은 것이다. 이때 중요한 건 서비스의 가입자 수이고 그들의 사용 빈도수, 충성도가 높은지 이다. 이제부터 청년들의 지역 정착에 관한 이야기는 고향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도시재생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다시 한번 살아볼 용기를 준 괜찮아마을을 통해 청년들이 스스로 지역에서 기회가 있구나 깨달은 거다.
언론사: 라이프인
날짜: 2020년 11월 07일
본문 보기: http://www.lifein.news/news/articleView.html?idxno=11481
"세상일은 다 우연히 일어나죠."(웃음)
어떠한 계기로 목포에 정착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대한 홍동우 대표의 답변이다. 홍 대표는 언젠가 반드시 지친 청년들이 쉬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실패해도 괜찮은 실험 공간을 만들 계획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홍동우, 박명호 두 공동대표가 진행한 제주 팝업 게스트하우스 '한량유치원'의 입주자였던 강제윤 시인이 20년 동안 공간을 대여해주겠다 제안했고 아무 연고도 없는 목포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렇게 우연히 정착한 지역, 목포에서 '여행처럼 사는 마을' 괜찮아마을이 탄생했다.
2018년 7월 1기 30명의 입주자를 시작으로 2018년 11월 2기 30명, 2019년 10월 16명의 청년이 괜찮아마을을 거쳐 갔다. 김송미 입주자는 괜찮아마을의 청년들의 삶과 공동체 생활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다행(多行)이네요>를 제작하기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무엇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그래서 위로받은 마을에서 다시 자신들이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간 청년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언젠가 다시 목포에 가고 싶어'라고.
떠난 이들이 그리워하는 고향 같은 마을. 어떻게 이 마을은 길 잃은 청년들의 고향이 될 수 있었을까? 괜찮아마을 홍동우 공동대표를 찾아가 그 비결을 들어보았다.
똑똑똑- 소문 듣고 왔습니다.
Q. 여기가 청년들의 마음의 안식처 맞나.
그렇다. 고향 같은 곳이 되었으면 하는 의도로 괜찮아마을을 만들고 있다. 사람들이 언제든지 와서 지내고 갈 수 있는 고향 같은 공간 말이다.
수도권 인구가 50%를 넘는다.(참고 : 지난 6월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 인구는 2,596만 명, 비수도권 인구는 2,582만 명으로 집계됐다.) 지방 출신 청년들은 고향에 대한 감성이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그리고 앞으로는 더더욱 돌아갈 곳 없는 청년들이 늘어날 것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재건축, 재개발로 없어졌다. 옛날에 느꼈던 감정도 찾아볼 수 없고 내가 고향이라고 불러야 할 마을도 없어졌다. 갈수록 나 같은 친구들이 많아진다. 나는 우리 청년 세대들이 고향이 없는 세대라고 보고 있다.
청년 문제도 굉장히 심각하다. 예전에 여행사를 하면서 많은 청년과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내가 만든 건 여행사였지만 사실 '여행프로그램'으로 정의할 수 없는 성격이었던 것 같다. 같이 음악을 듣고, 모닥불을 피워 놓고 이야기하고, 눈물도 쏟고, 서로 위로하고…. 여행했던 친구들이 3개월, 6개월, 1년이 지나도 친목 관계를 유지했다. 이러한 관계들이 형성되는 걸 보면서 '우리가 여행하는 이유는 어쩌면 치유의 목적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정신과를 방문해 상담받고 치료받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정신과 방문의 문턱이 너무 높다.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서 노래 한 곡 부르는 것과 정신과에 가서 우울증약을 처방받는 것의 차이가 너무 크다. 그래서 자살률 1위 국가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병원을 못 가서 죽음을 선택하는 나라이다. 나는 죽음 대신에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무언가를 제시하고 싶었다.
Q. 괜찮아마을에 참가한 사람들의 절반가량이 목포에 정착했다는데…
사실 이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괜찮아마을은 지역에 청년들이 살아보는 경험을 주고 이들을 다시 돌아가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목포에 남게 하는 게 목표는 아니었다. 처음부터 목표를 정착에 두지 않았으니 성과가 아니라 부수적인 결과이다. 70명이든, 80명이든 괜찮아마을을 수료하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게 되고 다시 다른 일을 도전해볼 수 있는 마음, 여유가 생긴다면 이후 그 사람이 어느 곳에 정착하는지는 상관이 없다. 뜻밖에도 30여 명의 친구가 남았다. 이들과 마을을 이루고 살아간다는 것은 새로운 결과였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 괜찮아마을 운영 후 전국적으로 지역 살이 프로그램이 많아지고 있는데, 현재 청년들의 성향이 반영되지 않았다. 청년들은 노마드적 성향이 강하다. 한 곳에 연고를 두지 않고 배낭 하나,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세상 어디든 돌아다니면서 일할 수 있다. 지금 어느 지역에 30명, 40명이 남아있다는 건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목포라는 지역을 몇 명이나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살다가 지쳤을 때 돌아갈 곳으로 생각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몇 명이 있고, 이때 동시 거주자가 몇 명 있다는 수치가 더 유의미하고 본다. 떠날 사람은 떠나고 올 사람은 오고. 우리는 고향 생태계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남았다'라는 표현보다는 '괜찮아마을이 갖추고 있는 인프라와 프로그램이 지금은 30명의 동시 거주자를 유지할 수 있게 한다'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온라인 서비스를 예로 들자면, 동시 접속자 같은 것이다. 이때 중요한 건 서비스의 가입자 수이고 그들의 사용 빈도수, 충성도가 높은지 이다. 이제부터 청년들의 지역 정착에 관한 이야기는 고향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도시재생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다시 한번 살아볼 용기를 준 괜찮아마을을 통해 청년들이 스스로 지역에서 기회가 있구나 깨달은 거다.
(하략)